후보교체론과 정치적 이탈 속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노무현을 지켜내
2026년 활동 재개…퇴행하는 정치에 맞서 노무현 정신을 다시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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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돼지. 2002년 대선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위기에 빠진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끌어냈다. (출처=노무현 사료관) |
2026년 노사모 활동의 재개는 그만큼 심각한 정치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노사모가 처음 탄생했을 때와 같은 위기의식일 것이다. 아울러 심각한 정치적 문제의식 가운데 지켜야 할 노무현 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4월 13일, 제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구 강서을에 출마한 노무현 의원은 네 번째 낙선이었다. 1988년 변호사 노무현은 재야의 부산 남구를 제의받아 쉽게 당선될 수 있는 곳을 마다하고 신군부 출신 허삼수를 이기겠다고 부산 동구에 출마했고 13대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1992년 부산 동구에 출마해 민자당으로 당적을 옮긴 신군부 출신 허삼수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유는 단순 명확했다. 1990년 1월 22일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은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야합을 해 민자당을 만든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김영삼의 흑심의 발로였고 노무현 의원은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고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다가 야도였던 부산이 여도가 되면서 패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가 있다.
“1990년 3당 합당 때 여당에 따라갔다면 국회의원이야 세 번, 네 번 하고 장관도 일찍 하고 도지사, 시장도 한 번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잘못된 정치 풍토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의 큰 자부심이고 행복입니다.”
이런 노무현 의원에 대한 가치는 높았다. 따라서 1995년 6월 제1회 지방동시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1위의 여론조사가 있었고 조순 서울시장 후보는 부시장 후보로 러닝메이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유리한 제안을 다 거절하고 부산시장 선거에 나선다. 그러한 분투에도 민자당 문정수 후보에게 아깝게 패배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지만 노무현 후보의 원칙과 정도는 분명했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직접 밝힌 적도 있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도전했습니다. 부산시민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면 뽑아주겠다고 권유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일입니다. 정치인의 원칙과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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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종로지역 행사에 참석하여 나란히 앉은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출처=노무현 사료관) |
1996년 노무현은 서울 종로에 출마해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에게 도전한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민주당 깃발로 이긴다면 민주당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은 강력한 후보였고 노무현은 낙선하고 말았다. 이명박이 비리로 중도 사퇴하면서 노무현 후보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다.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안정적인 종로가 아닌 부산 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던 것이다. 영남지역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출마하는 것은 매우 불리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이때를 가리켜 유시민은 “당신 자신이 계속 가서 깨부쉈다. 그게 노무현의 방식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자신을 온몸으로 던져서 부수려고 했던 구태의 정치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노사모의 탄생 때문이었다.
“쓰라린 마음을 다독이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내 홈페이지 ‘노하우’를 찾아와 밤새 울분에 찬 글을 소나기처럼 쏟아 놓았다……(중략) ‘바보 노무현’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총선에서 진 날 밤, ‘노하우’ 홈페이지에 글잔치가 벌어졌을 때 누가 제안을 했다. ‘우리 따로 모이자!’ 2000년 6월 6일 대전대학교 앞 조그만 PC방에 60명이 모였다. 여기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 창립총회를 했다.”
자서전 《운명이다》, 161~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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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모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시루떡을 앞에 두고 축하받는 노무현 민주당 지도위원 (출처=노무현 사료관) |
당시 현실론을 내세운 야합과 후진적인 정치 구태, 지역주의 정치에 참담함을 느낀 이들이 노무현 의원의 홈페이지에 모였고 노무현 의원에게 힘을 모으기로 했다. 가까운 지역에서 모이고 각자 역할을 나눈 데 이어 회비도 걷고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비록 처음 시작은 수백 명이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어서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대전의 PC방에서 홈페이지 전자투표로 정한 날짜와 일시에 총회를 열었다. 바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의 본격적인 탄생이었다.
노사모의 탄생과 그 활동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노사모는 좌절감에 빠졌던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민들 스스로 노무현을 지지하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조금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성원을 받는 것은 행복한 특권이었다. 2001년 5월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갈 뜻을 밝혔을 때 내가 마음으로 기댄 것은 바로 노사모의 성원이었다.”
자서전 《운명이다》,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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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 최초 팬클럽인 노사모창립총회에서 발언하는 노무현 민주당 지도위원과 장소를 가득 메운 회원들 (출처=노무현 사료관) |
처음에는 강연을 듣거나 즉석 모임을 하고 현수막 환영 등의 지지 활동을 하다가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노무현 의원의 뜻을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조금 규모가 큰 인터넷 동호회’나 ‘새로운 정치 지지 흐름’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선에 돌입하면서 노사모는 적극적인 지지 모임으로 바뀐다. 광주 경선 1위 등 국민경선 바람을 일으키며 노무현 의원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
하지만 5월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하락, 민주당의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궐선거 패배 등의 책임을 노무현 후보에게 물어 후보교체론 요구가 나오고 선관위는 노사모 활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해 압박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10월 4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를 만들고 10월 17일에는 김민석 의원이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합류한다. 이는 심각한 신뢰 위반 행위였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 압박 등에도 굴하지 않고 노사모는 온라인상에서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펼치며 전국을 돌면서 ‘희망 포장마차’와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에 나서는 등 지원 활동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탄생시킨다. 그 뒤의 위기 상황에서도 근본적인 명분과 원칙을 지켜내고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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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가 생태 농업과 마을 가꾸기 활동을 벌인 대통령의 곁에서 노사모 회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함께 했다. (출처=노무현 사료관) |
노사모는 2019년 9월 23일 운영비와 서버를 노무현재단에 기증하고 공식 활동을 종료했는데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애초의 규약에 따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초 총회에서는 전자투표를 통해 ‘노사모의 약속’이라는 일종의 규약을 추인했는데 그 가운데는 “참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결정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라는 규약이 있었다.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노무현 정신이 심대하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자기 정치를 하지 않았다. 자기 세력의 확장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야합을 단호히 거부했다. 오로지 민주 정신에 따른 정치를 했다. 시대적 과제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따라서 시대정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노사모는 이런 노무현을 지지했고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반대다. 본래 민주당 정신은 외면되고 자신의 이익과 세력 확장에 몰입하는 이들이 오히려 민주당과 민주시민을 훼손하고 내쫓김을 종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참된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며 지난 20여 년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되돌리는 퇴행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모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노사모는 어떤 이익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노무현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상황인 것이다. 아울러 민주주의 발전과 진보의 근간을 파내려는 어떠한 행위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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