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외인구단 만들기’는 적절할까? [김헌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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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7 09:00:44
김헌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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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데려오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모이느냐
▲ 배추를 단순히 여러 재료와 섞는다고 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금에 절이고 발효에 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의 외연 확장 역시 사람을 모으는 것보다 어떤 가치와 원칙으로 조직하느냐가 중요하다.


채소를 익히지 않아 영양소를 유지하면서 생생하게 섭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샐러드이고 다른 하나는 김치다. 그 중간쯤에는 겉절이가 있다.

샐러드는 신선한 채소를 한데 섞고 여기에 소스를 뿌려 먹는다. 하지만 오래 보관하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한다. 발효식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치는 다르다. 소금에 절이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부패를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의 활동은 억제되고 유산균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유산균은 마늘·파·젓갈·채소 등에 있는 당분을 분해해 젖산을 생성한다. 젖산이 늘어나면서 산도가 높아지고 신맛과 감칠맛이 생기며 유해 미생물의 증식도 억제된다.

그 결과 단순한 채소의 혼합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맛과 특성을 가진 발효식품이 탄생한다.

겉절이도 소금에 어느 정도 절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김치처럼 충분한 발효 과정을 거치는 음식은 아니다.

단순히 여러 채소를 한데 섞는다고 발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발효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과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단지 서로 다른 출신과 성향의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는다고 해서 좋은 정치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걸러야 할 것은 걸러내고, 배척해야 할 유해한 요소는 배척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연 확장과 조직의 재구성에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 1983년 발표된 이 작품은 기존 구단에서 버림받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외인구단’으로 다시 뭉쳐 강력한 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아무나 모은 팀이 아니었다


여기서 만화 한 편을 떠올려보자.

1983년 발표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큰 인기를 얻으며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작품의 독특한 설정은 각 구단에서 밀려난 선수들을 모아 ‘외인구단’을 만들고, 이들이 강력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짜릿한 통쾌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선수들을 무조건 모아놓았다고 최고의 팀이 된 것은 아니다.

외인구단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여기에서 ‘외인’은 기존 구단에서 버림받거나 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선수들을 의미한다. 손병호 감독은 부상을 입었거나 기존 야구계에서 더 이상 선수로 활동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던 이들을 모아 강력한 팀으로 만들어낸다.

그 중심에는 어깨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오혜성이 있었다.

작품이 보여주는 주제의식은 단순한 ‘언더독(underdog)’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에서 밀려난 약자를 응원하는 이야기를 넘어, 사람을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하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폐기해버리는 비정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항변으로도 읽을 수 있다.

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역량을 발견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대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람만 찾는 인사제도와 시스템의 모순도 생각하게 한다.

성과와 목표 달성에 앞서 사람의 가치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산업화 시대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압축성장의 이면을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오혜성은 결국 숙적 마동탁을 이긴다. 오혜성은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 야구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엄지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만약 자신의 성공과 야망만을 위해 움직였다면 그는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토니 블레어가 이끌었던 영국 ‘신노동당(New Labour)’은 중도화와 ‘제3의 길’을 내세워 외연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가치와의 차별성이 약화됐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외연 확장에도 중심이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도 외연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시도가 반복된다.

그러나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거 ‘제3의 길’을 주장했던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을 ‘신노동당(New Labour)’으로 변화시켰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은 경제적 역동성과 사회정의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인의 동등한 가치와 기회의 평등, 공동체와 함께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3의 길은 일관된 정치 이념과 경제 이론을 제시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실용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이 약해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복지를 이야기했지만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고 사회통합과 사회정의라는 가치 역시 위협받았다.

시장과 기업의 힘은 더욱 커졌고 권력과 재산의 불평등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키웠다. 노동시장의 소득 불평등과 이중화 역시 심화됐다.

정치와 정책이 사회적 평등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정치가 ‘샐러드’로 끝나지 않으려면

중요한 것은 무조건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다.

김치를 담그는 데도 과정과 조건이 필요하듯 정치조직 역시 자신이 대변해야 할 핵심 가치와 원칙을 먼저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대변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그 핵심을 중심으로 구성원을 단단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과 정치적 에너지가 창발적으로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외연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치와 원칙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한데 모으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정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포의 외인구단』 역시 버림받은 선수들을 아무렇게나 모아서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존 시스템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들을 하나의 목표 아래 다시 조직했기 때문에 강력한 팀이 될 수 있었다.

정치권의 ‘외인구단’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데려오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모이느냐다. 

분명한 가치와 원칙 없이 사람만 섞어놓는 무조건적인 외연 확장은 결국 하나의 샐러드에 그칠 수 있다.

당장은 그럴듯하고 맛있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지 못한다.

어설픈 겉절이 역시 당장 먹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발효되지는 않는다.

정치도 제대로 발효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걸러낼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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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댓글 >

댓글 1

  • 깜장왕눈이 님 2026-08-27 09:51:38
    나의 권력을 유지 연장하고자 외연확장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표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배신한 것이며, 스마트한 독재를 위한 제 3의 길이며,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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