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보다 사람이 먼저다...베니스 수상 이창동 감독이 던진 질문 [김헌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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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0 08:00:56
시사타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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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영화로 던진 질문…노동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쌍용차 해고에서 AI 시대까지…10년의 고민 끝에 꺼낸 ‘인간다움’

▲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출차=넷플릭스)


2026년 9월 12일(베니스 현지 시각) 제83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눈에 띄는 단어는 ‘기다림’과 ‘인내’였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영화 ‘버닝’ 이후 8년 만에 나온 작품이지만, 기획 단계까지 헤아리면 10년이 걸린 영화다. 1997년 데뷔작 ‘초록물고기’ 이후 6편에 불과하듯, 아무리 이창동 감독이 다작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던 이유는 감독 내적인 고민과 외적인 환경 때문이었다. 달라 보이는 두 요인은 사실 같은 맥락 안에 있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영화 ‘가능한 사랑’은 진중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는 바로 2009년에 일어난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와 파업, 그리고 진압 사태다. 경영과 정책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40%에 이르는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노동 참사였다. 다만 이창동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쌍용자동차 사태를 모티브로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량 해고와 이에 대한 저항을 폭넓게 담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창동 감독은 애초 영화를 통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제작을 중단하고 말았다. 윤리적인 고민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가능한 사랑’을 만들고 나서도 계속됐다.

이창동 감독은 “이야기의 시작은 10여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대기업 정리해고 사태였다. 노동자들이 파업했고 그것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충격도 있었고, 저 자신도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울러 “그런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에 대해 제가 과연 자격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프리 프로덕션’(영화 제작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영화를) 접었다”고 했다.

영화 제작을 앞두고 그간 준비했던 촬영과 제작을 중단한 것은 구체적으로 영화가 고통을 다루거나 담아내는 방식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격을 운운하며 제작을 그만두는 감독이 어디 있을까. 더구나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 말이다.

그것은 비단 이창동 감독에게만 해당하는 윤리적 고민이 아니었다. 이창동 감독은 “종종 영화가 타인의 고통을 영화를 위해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아야 하는지 그 질문을 제 스스로도 하고 관객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어쩌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러한 이창동 감독의 생각과 문제의식은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를 통해 드러난다.

 

해고 노동자이며 진압 후유증에 시달리는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 두 부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며, 목적은 자신의 방향에 맞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있다. 더구나 예지의 남편은 미옥의 남편과 달리 부유하다.

계층적·계급적 차이가 동정과 배려만으로 극복될 수는 없다. 더구나 착취와 갑을 관계는 더 일상적이고 은밀하다. 해고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연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하고 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에 대해 관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감독의 의중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쌍용차 사태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도 우회적으로 잠시 등장하는데, 그것은 비단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도박에 빠져 피폐하게 살고 있지만 원래 드래곤모터스 소속 노조원이었는데, 드래곤모터스는 쌍용자동차에서 따온 것이다.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 성기훈은 먹고살기 위해 치킨집, 분식집, 대리기사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고, 마침내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는 것은 물론 딸의 양육권도 잃는다. 더구나 동료들이 실직 뒤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비해고 직원들과 용역 직원이 공장으로 진입, 파업 중인 노조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2009.6.26 (사진=연합뉴스)
▲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으로 비해고 직원들이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뚫고 공장안으로 들어서다 부상자가 발생했다. 2009.6.26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쌍용자동차에서 실직한 이후 목숨을 잃은 사람이 30여 명이나 된다. 이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 그 극심한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황동혁 감독은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보면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노동자가 무너지면 가정이 붕괴된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황 감독은 개인의 정신적인 붕괴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과연 그것이 본질인지는 동의하기 힘들고, 어쩌면 극적인 효과를 꾀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소비된 셈이다. 이러한 점은 이창동 감독이 경계하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방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황 감독 개인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소비 형식의 콘텐츠가 아니라면 제작 투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나 환경에 더 초점을 두고 다루면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이창동 감독도 진중한 주제와 흥행의 불투명성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이라는 최고의 배우와 수준 높은 스태프를 통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야 더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제작비를 낮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중하고 깊은 성찰을 담은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아카데미에 진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아카데미 수상까지 이어질 테니 그 명성과 경제적 효과도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이창동 감독이 늘 그래왔듯이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이창동 감독 (사진=연합뉴스)

9월 13일(현지 시각)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은 한국 감독 최초로 에버트 감독상을 받았는데, 이 자리에서 한 수상 소감은 이를 잘 말해주었다.

“영화야말로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매체라고 생각했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 왔다”며 “그런데 영화를 만들수록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더 알게 됐다”고 했다.

여기에서 영화는 테크놀로지를 의미하고,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지 인간이 테크놀로지의 도구가 되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맥락이다.

인간은 아직 완벽히 분석될 수 없다. 인간의 가능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AI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창동 감독은 “자아가 없는 AI가 점점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고 인간 자신도 점점 자아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영화가 여전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사랑’도 그런 작은 시도였다”고 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실천에 대한 답을 이창동 감독은 강변하거나 설득시키지 않는다. 언제나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함께 답을 찾게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라는 매개물로 인간의 노동과 사람다움, 그리고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영화 연출자나 제작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에 정부는 무엇을 하고 민주 정당은 어떤 정책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AI 기계는 생태학적으로 수많은 자연자원을 소모하고 인간을 대체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AI 담론이나 반도체 산업의 진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담과 혐오가 교차한다.

AI 담론이나 반도체 전문가들이 리더가 된다고 해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다. AI 기계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놀라워하기는 해도 불안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런 콘텐츠에 현혹되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 더구나 AI 콘텐츠에는 돈을 내고 보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오히려 진품의 아우라가 중요해진다고 했다. 저렴하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가치가 덜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 땀 한 땀 수제로 제작한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이창동 감독은 좀 더 근원적인 인간관계의 이야기를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현대적인 현실 소재를 통해 시도하고 있다.

자본과 산업이 AI 기계로 치달으며 인간을 쫓아내고 소외시키며 수단화할 때,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이고 민주 정당이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인간다움을 진흥시키는 것이 사람을 중심에 두는 민주정부다. 그리고 무수한 생명을 중심에 두고 철학을 정립하고 정책을 구성하며 산업을 일으켜 나가야 한다.

이렇게 사람, 생명, 농업, 문화가 왜 정체성인지 되새기게 하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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