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특례, 유신시대의 ‘국위선양’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헌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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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1 00:00:00
김헌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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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에서 박정희 유신까지, 민주공화정의 원리로 다시 보는 병역특례
▲ 1868년 4월 6일(일본 구력 3월 14일) 메이지 신정부의 국가 운영 기본 방침을 담은 ‘5개조의 서약문(五箇條の御誓文)’. 같은 날 별도로 발표된 천황 조서에는 ‘국위선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사진=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아시아역사자료센터 제공)

 

예술·체육인에 대한 병역특례는 국위선양을 중요한 명분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언제,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는지 헤아린다면 그와 관련한 제도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1868년 4월 6일(일본 구력 3월 14일), 일본의 메이지 신정부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기본 방침을 밝혔다. 메이지 천황이 발표한 ‘5개조의 서약문(五箇條の御誓文)’과 함께 ‘억조안무국위선양의 어신한(億兆安撫国威宣揚の御宸翰)’이라는 문서가 발표되었다. 이 문서에서 국위선양이라는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억조안무(億兆安撫)는 수많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고, 어신한은 천황의 친필 문서를 의미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국위선양(国威宣揚)은 나라의 위신과 권위를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즉, 새로운 정부가 백성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위신을 널리 떨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국위선양이라는 말과는 그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은 왜 국위선양을 강조했을까.

이는 일본의 권력 구도를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 천황은 오랫동안 막부 체제에 밀려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866년 막부 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동맹을 맺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조정의 개혁파 세력과 연합해 왕정복고를 추진하고,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중심으로 한 막부 세력과 대립했다.

막부 세력의 저항과 신정부 세력의 무력 충돌은 이른바 보신전쟁(戊辰戰爭, 1868~1869)으로 이어졌다. 신정부군은 전쟁에서 우위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메이지 정부는 새로운 통치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메이지 정부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막부 체제가 붕괴한 이후 새로운 국가의 권위와 위신을 세우고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했다. 서구 열강에 대응하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를 통합하고 일본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위선양은 새로운 국가 질서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표현으로 등장했다.

물론 메이지 유신 자체를 곧바로 군국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후 일본이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는 역사적 흐름은 분명하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고 국가의 권위와 위신을 강조하는 논리는 그 과정에서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제강점기에도 국위선양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특히 전쟁이 확대되면서 국가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논리는 전쟁 동원과 수탈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개인의 삶이나 행복보다 국가의 목적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적 가치가 강조된 것이다. 

 

▲ 1972년 유신헌법 공포식 모습. 유신헌법은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조치권 등을 도입하며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켰다. (사진=국가기록원)

해방 이후 한국에서도 국위선양은 국가 정책의 중요한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예술·체육인에 대한 병역특례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1973년 3월 3일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특례 제도가 도입되었다. 국제대회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예술·체육 특기자가 군복무 대신 별도의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적인 성취를 국가의 위신과 연결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상 특례를 부여한다는 발상이다. 예술과 스포츠는 본래 개인의 행복과 성취,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국가의 위신을 드높이는 기준이 되면서 예술가와 스포츠 선수의 성취는 국가적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특히 이 제도가 도입된 1973년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출범한 직후였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정당과 정치활동을 중지시켰다. 이어 10월 27일 유신헌법안이 공고되었고, 11월 21일 국민투표를 거쳐 12월 27일 유신헌법이 공포·시행되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 제도를 도입했다.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중임 제한을 없애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초법적인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도 대통령에게 부여되었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3분의 1에 대한 추천권까지 갖게 되었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국정감사권마저 폐지되었다. 사실상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크게 훼손된 체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신정부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상과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경제성장과 국제적 성취는 국가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 예술가와 스포츠 선수들 역시 국가의 위신을 알리는 존재로 평가받았다.

병역특례 제도가 오로지 유신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신체제 출범 직후 국위선양을 주요 명분으로 한 병역특례 제도가 도입됐다는 사실은 당시의 국가주의적 통치관과 제도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예술적 성취와 스포츠 활동을 국가의 권위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바라본 시대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메이지 유신 당시 강조된 국위선양과 한국의 병역특례 제도 사이에 직접적인 제도적 계승 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의 위신을 앞세워 개인의 성취를 국가적 목적에 연결하는 사고방식에는 공통된 국가주의적 성격이 있다.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국가주의적 가치가 민주공화국의 병역제도에 여전히 중요한 명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제도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국제대회에서의 순위나 수상 실적을 기준으로 병역상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개인의 재능과 성취를 국가의 위신과 연결해 병역의무의 이행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 민주공화정의 원리에 부합하는가.

더구나 대한민국은 이미 민주주의와 문화의 힘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K-컬처는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문화의 가치는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가 아니라 공감과 존중을 통해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2026년 10월 3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에서의 승패와 메달의 색깔이 선수의 모든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 스포츠의 본래 정신은 경쟁 자체를 넘어 인간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데 있다. 국제대회에서의 일회적인 성적만을 국위선양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은 오히려 스포츠의 본래 가치를 좁힐 수 있다.

문화예술에서도 1등주의는 더 이상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예술의 가치는 순위만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문화의 힘은 다양성과 창의성에서 나온다.

21세기 다원화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위신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엄과 공정성, 그리고 민주공화정의 원리다. 예술과 스포츠의 성취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국가적 보상의 수단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국위선양을 명분으로 한 예술·체육 병역특례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 개인의 성취를 국가적 보상의 기준으로 삼아 병역의무에 차이를 두는 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 공정성을 중시하는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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