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경기장 봉쇄, 민주주의의 경계를 넘었다 [김헌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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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09:00:32
시사타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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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자유롭지만 피해는 현실이다...핸드볼경기장 사태의 철학적 성찰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 가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참가자들이 게이트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17 (사진=연합뉴스)


잠실 핸드볼경기장 주변의 불법 시위와 봉쇄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단순한 시설 이용의 불편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경기장을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핸드볼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다. 이곳에는 당구, 댄스스포츠, 산악, 세팍타크로, 수상스키·웨이크보드, 수중·핀수영, 우슈, 펜싱, 핸드볼 등 여러 종목의 단체가 입주해 있다. 국가대표 선수 관리와 육성, 국내외 대회 참가 지원, 각종 행정업무와 장비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봉쇄 과정에서 선수들은 필요한 장비를 반출하지 못해 사비를 들여 대체 장비를 마련해야 했고, 해외 선수들의 비자 발급 등 국제 업무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이는 특정 단체나 개인의 불편을 넘어 국가 스포츠 행정 전반에 영향을 미친 문제였다.

피해는 체육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기장은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공연장으로도 활용된다. 경기가 없는 기간에는 다양한 공연과 문화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예정된 공연들은 연기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해야 했다. 공연 장소 변경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추가적인 대관비와 운영비가 발생하고, 영세한 공연기획사에게는 심각한 경영상 부담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단지 법률 위반 여부를 넘어 민주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와도 충돌한다는 점이다.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18 (사진=연합뉴스)

칸트는 『의무론』에서 정언명령을 통해 “네 행위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말했다. 이는 개인의 신념이나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규범이 될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공공시설을 봉쇄하고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타인을 목적 그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칸트의 윤리학과도 거리가 멀다.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그 자유가 시설 점거와 봉쇄로 이어져 일반 시민은 물론 체육행정 종사자와 국가대표 선수들의 권리, 안전,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유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자유의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까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 이전의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사회계약과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무질서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공공시설이 장기간 사실상 통제되고, 합법적 관리 주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이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존 롤스의 『정의론』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롤스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등한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고 보았다. 집회의 자유 또한 중요한 기본권이다. 그러나 그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생계와 계약,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권리 간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민주사회는 어느 한쪽의 권리만 절대화하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권리들 사이에서 공정한 균형을 찾아가는 체제다.

롤스는 또한 시민불복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공공의 정의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대화와 조정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봉쇄와 통제가 반복되었다면 시민불복종의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한나 아렌트는 민주주의를 다양한 사람들이 공적 공간에서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민주주의의 힘은 상대를 침묵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는 데 있다. 대화와 조율을 거부한 채 물리적 힘으로 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공론장의 정신과 배치된다.

결국 이번 핸드볼경기장 봉쇄 사태는 단순한 시설 관리 문제나 일시적 충돌 사건이 아니다.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개인의 신념과 타인의 권리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묻는 민주주의의 시험대였다.

민주주의는 자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책임이 함께할 때 비로소 자유는 정당성을 얻는다. 자신의 신념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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